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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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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연구와 어린이 교육에도 큰 기여 더보기 한글 연구와 어린이 교육에도 큰 기여 한편, 지석영은 1890년대 후반 독립협회의 주요 회원으로 활약하면서, 밀 재배의 경제성을 설파하고 주시경과 함께 한글 가로쓰기를 주장한 선각자이기도 하다. 한글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은 표시하지 못하는 음이 없고 매우 배우기 쉬운 문자임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이 연구하지 않고 민간에 맡겨버린 결과 혼륜(混淪)과 와오(訛誤)가 심하여졌다고 격렬하게 비난하며 한글을 새롭게 재정비하여 나라의 자주와 부강을 도모할 것을 건의했다. 고종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1905년 [신정국문(新訂國文)]을 공포했는데, 이는 지석영의 작품이다. 신정국문이 학계에 논란을 일으키자 지석영은 한글 연구를 위한 조직으로 1907년 국문연구소를 설립했고, 그가 교장으로 있..
지석영, 서양의 종두법을 배우다 더보기 지석영, 서양의 종두법을 배우다 1879년 전국에 천연두가 창궐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수많은 어린이들이 생명을 잃었다. 지석영의 조카딸도 그해 사망했다. 한의학을 공부했던 지석영은 천연두의 창궐에 한의학의 무력함을 통감했다. 서양에서 실시하고 있는 종두법이라는 것을 조선의 아이들에게 시행할 수 있다면 수많은 목숨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안타까웠다. 3년 전 스승인 한의사 박영선(朴永善)이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오면서 도쿄 순천당의원 의사에게 우두종두법을 배우고 일본인이 쓴 [종두귀감]이라는 책 한 권을 갖고 돌아왔다. 박영선은 그가 배운 종두법과 그 책을 제자들에게 강의했는데, 지석영도 그 가운데 한 명이었다.책을 읽고 강의를 들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런 지석영의 귀에 당시 부산..